지시하지 말고 초대하라
얼마 전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한 공대에 다니는 아들과 밥을 먹으며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필자에게는 초일류의 상징과도 같았던 삼성전자보다 SK하이닉스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요즘 친구들은 하이닉스를 더 선호해요. 단순히 연봉 문제가 아니라, 거긴 구성원을 존중하고 자유롭게 일하는 분위기라고 하더라고요.”
아들을 통해 들은 젊은 세대의 의견은 지난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 삼성과 하이닉스의 엇갈린 희비와도 맞닿아 있다. 그들의 시각은 두 기업이 보여준 상반된 성과를 이해하는 핵심 단서이기도 하다. 철저한 시스템과 관리로 상징되던 ‘관리의 삼성’이 경직된 관료주의로 주춤하는 사이, 구성원에게 자율을 부여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하이닉스의 ‘수평적 문화’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했다. 젊은 세대는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조직보다, 스스로 납득하고 신나서 일하는 조직이 결국 이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복종이 아닌 주도적 몰입
방송인 타일러 라쉬가 재미있게 풍자한 한국 조직문화의 모습도 이러한 논점을 강화해 준다. 그는 한국 직장인들이 상사의 지시를 들으면 일단 “네”라고 답하지만, 뒤돌아서서는 “도대체 이걸 왜 시키는 거야?”라며 냉소적인 질문을 한다고 했다. 상사 앞에서 보이는 가짜 동의와 영혼 없는 순응적 조직 행동인 것이다. 반면 흔히 서구권이라고 할 수 있는 수평적 조직에서는 지시가 내려오면 먼저 “왜(Why)?”를 묻는다고 했다. 그리고 질문을 통해 업무의 취지와 가치를 이해하고 납득했을 때, 비로소 “네(Yes)”가 나오고 몰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앞에서의 기계적인 복종이 뒤에서의 조용한 태업으로 이어지는 조직이 정체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정한 규율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구성원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자율의 에너지도 놓칠 수 없다. 그렇다면 규율을 유지하면서도 구성원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자율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건강한 리더십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그들이 억지로 끌려오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마음으로 리더가 제안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 해답을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의 대미를 장식하는 30번째 원칙, “상대방이 당신이 제안하는 것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게 하라(Make the other person happy about doing the thing you suggest)”에서 제시한다. 이 원칙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오해를 사곤 한다. 사실 직원의 주도성을 일으키는 방법에 관해서는 이미 앞의 원칙들에서 다양한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제시되었다. 카네기는 지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근본 원리를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네기 원칙의 진정한 함의는 지시(Command)를 초대(Invitation)로 바꾸는 리더십의 전환에 있다.
지시는 “이 일을 해”라고 상대방을 통제하는 행위다. 여기에는 상대의 의지나 감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반면 초대는 “이 일이 당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며 동참을 권하는 행위다. 타일러가 지적한 한국 조직문화의 맹점은 바로 이 초대의 과정 없이 지시만 남발한다는 데 있다. 카네기의 30번째 원칙은 업무라는 의무를, 성취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로 재정의하여 상대를 정중히 초대하는 기술이다.
자기중심에서 타인중심으로
이것이 작동하려면 리더의 마인드셋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바로 자기중심(Self-centered)에서 타인중심(Other-centered)으로의 이동이다. 대부분의 리더는 습관적으로 ‘내(조직)가 원하는 것을 그가 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카네기는 질문의 주어를 바꾸라고 조언한다. ‘그가 이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인간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다. 엑스트라 취급을 받으며 남의 대본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리더가 시키는 일만 하는 부하직원은 스스로를 도구로 인식하기 때문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리더가 나의 제안이 상대의 성장, 평판, 혹은 자아실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Alignment)를 고민하고 제시할 때, 상대방은 비로소 그 일의 주인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그리고 자신의 이익과 조직의 목표가 일치한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발적인 몰입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원칙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카네기는 막연히 잘해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리더가 제안을 던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정교한 사고 과정을 제시했는데, 이를 3단계 실천 전략으로 정리할 수 있다.
명령을 제안으로 바꾸는 3단계 공식
첫째는 진정성(Sincerity)과 공감(Empathy)이다. 카네기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약속하지 말며, 자신의 이익은 잊고 타인의 이익에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리더가 자신이 줄 수 없는 보상을 약속하거나,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인정인지, 자율성인지, 혹은 휴식인지) 모른 채 던지는 제안은 기만이다. 지시하기 전에 멈춰서 상대를 관찰하는 것, 이것이 시작이다.
둘째는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소망을 연결(Alignment)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카네기는 “자신이 제의하는 일을 함으로써 그 사람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가는가를 생각하고, 그 이익을 다른 사람의 소망과 일치시키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회사를 위해 해”는 정말 자기중심성에 매몰된 압력에 가깝다. 리더는 지시하는 일이 직원의 경력 개발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그 과업이 직원의 리더십을 증명할 어떤 기회가 되는지를 찾아내 연결해야 한다. 이것이 리더가 해야 할 고차원적인 사고 작업이다.
셋째는 이익을 바탕으로 지시가 아니라 제안(Suggestion)을 하는 것이다. 카네기는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할 때는 그 일을 함으로써 그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법을 취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김 대리, 창고 정리 좀 해"라고 밑도 끝도 없이 던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재고 파악이 제때 안 돼서 출고 때마다 팀원들이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 김 대리가 우리 제품 흐름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니, 이번에 김 대리 주도로 분류 체계를 효율적으로 잡아줄 수 있을까? 한번 시스템을 만들어두면 앞으로 불필요한 재작업이 줄어들어 김 대리 본인의 업무 시간도 훨씬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거야."라고 목적과 이익을 성의 있게 설명하며 제안하는 것이다. 전자는 짜증나는 노동이지만, 후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을 높이는 프로세스 개선 프로젝트가 된다.
작은 태도의 변화가 만드는 신뢰
리더십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이먼 시넥은 그의 유명한 모델 ‘골든 서클’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What)’을 하는지 보고 구매하지 않는다. ‘왜(Why)’ 하는지를 보고 구매한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은 리더가 시키는 ‘일(What)’ 자체에 매료되지 않는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Why)’에 공감할 때 비로소 마음을 연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문장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가져오라고 지시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를 보여주라.” 여기서 말하는 바다가 반드시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비전일 필요는 없다. 매일 팀원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잔소리도 해야 하는 현실의 리더들에게 그런 말은 때로 간지럽고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바다란, ‘내가 존중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느낌,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라는 사소한 확인이면 충분하다.
카네기 역시 이 원칙을 적용한다고 해서 당장 상대방이 드라마틱하게 변하거나, 싫던 일이 갑자기 좋아지는 기적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다만, 명령조로 말할 때 생길 수 있는 반발심을 줄이고, 기분이 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더 협조적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지시를 부탁으로 바꾸고, 명령을 제안으로 바꾸는 이 작은 태도의 변화가 당장은 큰 성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네, 알겠습니다” 뒤에 숨겨진 한숨을 “그래, 한번 해보자”는 끄덕임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결국 서로 믿고 일하는 단단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여성경제신문 연재 칼럼 ‘김승중의 슬기로운 인간관계’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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